안녕하세요. 저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 김용남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여러분들은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휴식을 가져야 할 겨울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중등학교가자닷컴의 겨울 캠프에 들어오셨다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한걸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기에 선생님은 이런 여러분들이 참 대견합니다.

3학년 2학기 동안에 배웠던 내용 중 우리가 꼭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주제를 총 6차시로 구성하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힘을 내서 열심히 해보도록 합시다.

오늘은 6.25 전쟁에 대해 다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6.25 전쟁과 관련된 영화 예고편을 하나 보도록 할까요? 영화 제목은 '오빠 생각' 입니다.

< 영화 '오빠 생각' 예고편 >

6.25 전쟁으로 인해 소중한 가족과 지켜야 할 동료를 잃은 한상열(임시완 분)이 우연히 부산의 군부대 내 고아원에 배치되게 되고, 자원 봉사자 박주미(고아성 분)와 함께 고아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어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군인들은 고아 어린이 합창단의 순수한 노래로 위안을 얻게 되는데요.


혹독한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고아 어린이들의 순수한 합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그리고 동생을 지키려는 오빠의 희생과 사랑은 우리에게 저절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우리 민족 상잔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6.25 전쟁....

한번 시작해볼까요?

여러분, 6.25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알고 있나요?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남한의 대부분이 잠들어 있을 휴일 새벽에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됩니다.

여기까지는 잘 알고 있는 내용이고, 그러면 전쟁이 언제 휴전되었는지는 알고 있나요?

1953년 7월 27일 월요일에 휴전 협정이 체결됨으로서 6.25 전쟁의 총 기간은 3년 1개월 정도 랍니다.

😁 자, 그러면 6.25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부터 살펴봅시다.

<냉전( Cold War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이 서로 대립을 하게 되는데, 이를 '냉전'이라고 합니다. 소련은 어떻게 해서든 공산주의 세력을 확장시키려고 하였고, 미국은 이를 저지하려고 하였죠.

우리 나라는 광복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 때문에 남과 북 따로 정권이 수립되었고, 특히 북한은 소련,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로부터 많은 전쟁 지원을 받게 됩니다. 즉 북한은 한반도 전체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 침략 준비를 했다는 말이죠.

<38도선 근처에서의 잦은 분쟁>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비난하였고, 38도선 근처에서 군사적 충돌이 잦았습니다.

북한은 전쟁 준비를 위해 소련과 비밀 협정을 맺고, 탱크 등 최신 무기를 도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조선 의용군' 이라는 부대를 북한에 북귀 시켜 북한군의 전력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남한은 어떨까요? 전쟁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요?

<미국의 애치슨 선언>

남한은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1950년 1월 '애치슨 선언'을 통해 미국의 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시켜 버립니다. 즉 남한은 미국의 방어 구역에서 더이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죠.


이렇게 남한보다는 북한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은 기습 남침을 하게 됩니다.

😊 6.25 전쟁의 원인을 알아보았으니, 지금부터는 그 과정에 대해 살펴봅시다.

왼쪽의 첫 번째 지도를 보면 소련으로부터 탱크 등의 최신 무기를 공급받은 북한은 기습 남침을 하여 3일도 안되어 서울을 함락하고, 3개월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두 번째 지도를 보면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을 통해 서울 탈환에 성공하고 38도선을 넘어 압록강 유역까지 진격하게 되지요.

하지만 세 번째 지도를 보면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유엔군과 국군은 할 수 없이 다시 후퇴하다가 서울을 다시 빼앗깁니다.

네번째 지도를 보면 1951년 1월 이후 38도선 근처에서 전투를 계속하다 1953년 7월에 휴전 협정이 체결됨으로서 전쟁은 끝이 나게 됩니다.

<서울을 함락한 북한인민군>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 장군>

<중공군의 참전>

<휴전 협정서>

😊 그렇다면 6.25 전쟁은 우리 나라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요?

6.25 전쟁은 3년 1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남과 북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옆의 자료를 보면 다양한 고통과 아픔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상자가 남북한 전체 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약 500만여명이나 되었습니다.

둘째, 수많은 전쟁 고아와 이산 가족이 생겨나게 됩니다.

셋째 남북한 모두 대부분의 건물과 산업 시설이 파괴되고 이를 회복하는 데에 엄청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게 되죠.

넷째, 남북한은 현재까지 분단됨으로서 군사적 대립으로 인한 불안, 경제력의 차이, 언어 등 문화의 차이 등 수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작년 2019년에는 남북한 정상회담,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등 다양한 평화적 기류가 있었지만, 올해에는 다시 남북한 사이에 냉각 기류가 흐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러분은 남북한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명 군사적 불안 해소와 한민족이라는 의미에서 통일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통일로 인해 경제적 비용 등 아직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6.25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이유, 일어난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시 공부해보니 어떤가요? 조금 생각이 나시나요? ^^

마지막으로 6.25 전쟁과 관련된 문제를 풀어보고, 덤으로 영화 '오빠 생각'의 고아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를 감상해 볼까요?

<영화 '오빠 생각' - 즐거운 나의 집>

<문제를 스크롤하면서 다같이 풀어보아요^^>

<참고>

  • 영상 출처 : 유튜브 밑의 제목 및 출처 확인

  • 사진 및 그림, 내용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홈페이지, 중학교 3학년 역사2 교과서

내용구성 : 김용남(경북대학교사범대학교부설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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