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끔찍한 비극

5차시 :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전투기, 탱크(전차), 원자폭탄(핵무기) 등의 전쟁무기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익숙(?)한 무기들인데요.

"이런 무기들을 인류는

언제부터 사용하게되었을까요?

오늘의 학습 속에서 그 답을 찾아봅시다~!






오늘은 인류 역사에서 최악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도록 합시다!





제1차 세계대전

1914-1918

대체 왜 일어나게 됐을까?

[ 제국주의 경쟁의 심화] 제1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배경은 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식민지 경쟁이 서로간의 갈등을 낳은 것이지요. 통일 이후 빠르게 세력을 키워 나갔던 독일제국은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와 3국동맹이라는 외교관계를 형성합니다. 한편 독일의 확장을 견제하려 했던 영국은 프랑스, 러시아와 3국협상이라고 불리는 외교관계를 형성하는데요. 이런 대립과 갈등은 점차 심해지게 됩니다.


[ 발칸반도의 민족 갈등 ] 발칸반도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지역인데요. 이 지역을 더 이상 오스만제국이 지배하지 못하게 되자 슬라브족 사람들과 게르만족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게 됩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범슬라브주의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범게르만주의가 대립하면서 유럽에는 전쟁의 위기가 감돌게 되었습니다.


[ 사라예보 사건 ] 그러던 중에 결국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계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사라예보 사건이라고 부르지요.

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게 되는데요. 그러자 슬라브족인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도와주려 합니다. 여기에 게르만족인 독일이 오스트리아의 편에 서면서 전쟁을 선포하고 침공을 시작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지요.


< 사라예보 사건(1914) >


제1차 세계대전의 전개

독일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유럽은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으로 나뉘어 전쟁이 이루어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개과정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많은 전투가 참호전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인데요. 기관총과 같은 무기의 개발로 단순히 상대편을 향에 돌격하다가는 큰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양쪽은 참호를 파고는 서로 대치하는, 독특하면서도 지루한 전쟁의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이런 참호전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들은 신무기를 개발하게 되는데요. 탱크, 전투기, 잠수함, 독가스와 같은 새로운 무기들이 등장하면서 전쟁은 다양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때 잠수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나라가 독일이었는데요.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통해 영국의 해상봉쇄를 뚫어내려고 합니다. 문제는 중립국의 선박까지도 무제한적으로 공격해서 침몰시켜 버렸다는다는 것인데요. 중립국이었던 미국의 선박까지 공격당하면서 1917년에는 드디어 미국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러시아혁명으로 러시아가 전쟁에서 철수를 하였음에도 미국의 참전 이후 전쟁은 연합국 쪽으로 기울게 되는데요. 1918년이 되면 동맹국들이 차례차례 항복하고, 무리한 전쟁이 한계에 이르자 독일에서도 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결국 독일의 항복을 끝으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특징과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국가와 통치자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끔찍한 전쟁이었습니다. 사망자만 1000만 명에 가까웠던 이 끔찍한 전쟁은, 이제 전쟁의 모습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모든 자원과 국민을 쥐어짜내는 총력전이었던 것이지요.

전쟁이 끝나고 연합국의 대표들은 파리강화회의(1919)에서 전후 처리를 의논합니다. 이때 미국 대통령 윌슨이 주장한 '민족 자결주의'는 여러 약소국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였죠. 이후 연합국과 독일은 베르사유조약(1919)을 맺게 되는데요. 독일에게 전쟁의 책임과 배상을 묻는 이 조약은 독일에게 제법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은 식민지와 일부 영토를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금액의 배상금을 물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군비도 제한 당하게 되는데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성립된 세계 질서를 우리는 '베르사유 체제'라고 부릅니다.






<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조약을 맺는 모습 >

제2차 세계대전

1939-1945

대체 왜? 대공황과 전체주의

[ 대공황의 발생]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의 사회와 경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경제 호황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특히 필요한 물자 생산을 주도하고 각국에 경제적 지원을 해줬던 미국이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동안 늘어나는 제품의 수요에 맞춰서 기업은 폭발적으로 생산량을 늘려갔고, 큰 이익을 거두며 경제가 성장했었는데요. 기업은 생산량을 날로 늘려가는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수요와 소비가 줄어들며 재고가 쌓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시작하면서 쌓였던 문제가 크게 터지고 맙니다. 대규모 경기 침체가 발생해서 많은 기업과 은행이 파산하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데요. 이러한 경제 위기는 전 세계로 번져나가며 많은 나라들의 경제가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대공황'이라고 부르지요.


[ 대공황 극복 노력 ] 세계 경제가 마비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자유방임주의 경제 정책을 수정해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주도로 뉴딜정책을 펼칩니다. 정부가 개입해서 경제를 통제하고, 대규모 건설 등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는 등 국가주도로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 것이지요. 한편 식민지가 많았던 영국프랑스는 본국과 식민지들을 묶어서 보호무역을 통해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나라들처럼 대공황의 위기를 가진 것들을 활용하여 극복할 수 없었던 나라들이 있었는데요. 특히 이탈리아, 독일, 일본이 그랬습니다.

[ 전체주의의 등장 ]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 독일, 일본에서는 전체주의가 나타났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라면서 국민의 단합과 희생을 강요했던 것이지요. 이는 결국 분노의 대상을 다른 나라와 민족으로 돌리고, 침략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입니다.

이탈리아

대공황 이전부터 무솔리니파시스트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전체주의(파시즘)를 강화하였다.

독일

히틀러 나치당(나치스)가 정권을 장악하고 전체주의(나치즘)를 강화하였다.

일본

일본은 군부가 강한 권력을 가지고 군사력을 중요시하는 군국주의를 추진하였다.



< 1942년 추축국이 우세하였을 때의 지도 (위) >

<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영화 예고편 (아래) >

제2차 세계대전의 전개

1934년이 되면 히틀러와 나치당은 독일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군비를 증강시키는데요. 결국 1938년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1939년에는 체코도 점령하게 됩니다. 이어서 독일은 소련과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소련과의 충돌을 피한 뒤 폴란드를 침공하게 됩니다.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됩니다.

전쟁 초기 독일이 유럽 대부분 지역을 장악한 상황에서 영국과의 전쟁이 장기화되자 독일은 소련으로 침공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는 히틀러에게 있어서 큰 실수였는데요. 소련이 생각보다 훨씬 강했던 것입니다.

한편, 1937년부터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하고 있었던 일본은 전쟁이 길어지자 자원 확보를 위해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진출하게 되는데요. 이에 미국과 영국 등은 일본에 대한 자원 수출을 금지하게 됩니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일본은 1941년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 해군기지까지 기습공격하게 되는데요. 이를 계기로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일본과 미국이 태평양을 두고 싸운 전쟁을 따로 태평양전쟁이라고도 부르지요.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연합국)이 승리를 거두면서 전쟁은 점차 반전되기 시작합니다. 1943년에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이 독일군을 몰아내고,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이 붕괴됩니다. 1944년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유럽을 빠르게 회복하게 됩니다. 결국 1945년에는 독일이 항복하게 됩니다.

독일의 항복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게 되는데요. 이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대전을 넘어서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량살상무기의 사용과 무차별적인 학살로 5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많은 것이 파괴되었는데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우리나라 사람들도 제2차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은 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고 일본은 미군정의 관리를 받게 됩니다. 이탈리아에는 새로운 공화국 정부가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식민지 지배를 받던 많은 나라들이 전쟁 이후 독립을 되찾게 되는데요. 우리나라도 일본의 패망과 함께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연합국을 중심으로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데요. 이에 따라 1945년에는 국제연합(UN)이 설립되게 됩니다. 오늘날까지도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지요.


< 국제 연합 (United Nations) >






지금까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자유롭게 단 3개의 문장으로만!!

오늘 학습한 내용에서 중요한 부분을 아래에 스스로 정리해봅시다!



한걸음 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우리나라는 독립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독립은 전쟁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립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결실을 맺고 인정을 받았던 것이지요.

영상과 함께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생각해봅시다.







국제연합(UN)은 오늘날 우리생활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국제기구입니다. 유네스코(UNESCO),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통화기금(IMF),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많은 산하기구를 가지고 있는데요.

영상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해 국제연합이 어떤 일을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사용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ko.wikipedia.org)

내용구성 : 남정일(대구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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