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김영하 지음
-낯설고 새로운 곳을 갈망하는 인생 여행자들에게 권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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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여행을 꿈꿀까?
요리나 연애, 화장법, 자전거 타기를 책으로 완벽하게 배울 수 있을까? 흉내는 낼 수 있으나, 미흡한 부분이 남는다. 여행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완전히 배우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여행은 익숙하고 편안한 지금 이곳을 떠나 낯선 환경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낯설음과 불편함과 두려움이라는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나를 발견해 나가는 또다른 배움의 장.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여정을 살아가는 한 명의 여행자이다. 사실 집밖을 나서면서부터 낯선 여행을 경험하는지 모른다.
이 책은 소설가 김영하가 쓴 여행에 대한 아홉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여행을 떠올려 보면서 읽어보세요.^^
인생과 여행의 공통점은?
나에게 여행이란?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은?
책 속 원문 읽기
슬픔을 몽땅 리셋한, 호텔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호텔 청소의 기본 원칙은 이미 다녀간 투숙객의 흔적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다. 그들의 냄새까지 지워야 하니까 호텔에선 가정집보다 훨씬 독한 세제와 방향제를 쓴다. 호텔에 들어설 때마다 맡게 되는 그 냄새, 분명 처음에는 자연의 어떤 향을 흉내냈겠지만, 어느 순간 그 근원을 몰각한 듯한, 아니 아예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한, 이제는 그저 세계와 방향제 냄새로만 지각되는 그 익숙한 향의 습격을 받는다. 나라마다 호텔 냄새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세제와 방향제 특유의, 여타의 다른 잡냄새를 일거에 제압하는 독선적이고 인공적인 향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 덕분에 우리는 호텔의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마치 새집에 들어선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 몇 시간 전에 누군가가 서둘러 체크아웃하고 나갔을 것을 짐작하면서도, 눈으로는 활짝 젖힌 커튼 밖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코로는 세제와 방향제 냄새를 맡으며, 그런 찜찜함을 잊어버리고 만다.
호텔에선 언제나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다. 처음 들어설 때도 그렇고, 다음날 외출하고 돌아올 때도 그렇다. 호텔은 집요하게 기억을 지운다. 이전 투숙객의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전날 남겼던 생활의 흔적도 지워지거나 살짝 달라져 있다.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정확히 어제와 같은 오늘이 펼쳐진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잘 운영되는 호텔에서 느끼는 기분은 <사랑의 블랙홀>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끝없이 반복되는 듯하다. 그래서 일상사가 번다하고 골치 아플수록 여행지의 호텔은 더 큰 만족을 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문제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나에게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만 같다.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 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65~66쪽)
일상의 집을 떠나 여행지에서 맞딱뜨리는 그곳, 호텔
일상의 의무감, 숙제, 번다함, 슬픔, 혹은 상처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공간으로 호텔을 이야기한다.
작가의 시선이 독특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대목이네요. 여러분에게 호텔은 어떤 곳인가요?
타인에 대한 환대에서 시작되는, 인생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신생아는 자기가 도착한 나라의 말을 모른다. 부모와 친척들이 참을성을 가지고 몇 년을 도와야 비로소 기초적인 언어를 익힐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것을 갚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갈 때, 남아있는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환송한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문명은, 마치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를 배웅하듯이 망자를 대한다. 관 속에 노잣돈이나 길동무 인형을 넣어준다. 철저한 무신론자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면 그들이 다음 세상에서 평안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타인의 환대 없이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자도 현지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 서로를 적대하고 살육해왔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이들을 손님으로 맞아들이고, 그들에게 절실한 것들을 제공하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떠나보내오기도 했다. 거의 모든 문명에, 특히 이동이 낮은 유목민들에게는 손님을 잘 대접하라는 계율들이 남아 있다.
(138~139쪽)
지구라는 행성의 여행자
우리 모두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부모님과 친척들의 어마어마한 환대로 지금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
같은 의미로, 여행도 또한 현지인의 환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작가의 의미 연결이 인상적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여행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의 동굴을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는 <오디세이아>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오디세우스와 열두 명의 부하는 차례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때 오디세우스는 자신들이 가져온 귀한 포도주를 키클롭스에게 선물한다. 포도주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이때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어로는 우티스(Outis), 영어로는 노바디(Nobody), 우리말로는 '아무도 아니'라고 답한다. 기분이 좋아진 키클롭스는 포도주 선물에 대한 답례를 하겠다고 한다. 가장 마지막에 아무도 아닌'(놈을) 잡아먹겠다는 것이다. 생명을 연장한 오디세우스는 살아남은 부하들과 함께 술에 취해 잠든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의 눈을 찌른다. 비명을 듣고 동굴 밖으로 몰려온 다른 키클롭스들은 누가 그를 괴롭히느냐고 묻는다. 키클롭스는 대답한다. '나를 죽이려는 놈은 아무도 아니야.' 영어로는 'Nobody is killing me'로 번역되는 이 말은 재미있는 말장난으로 우리말로는 어떻게도 완벽하게 번역하기 어렵지만 어쨋든 자기를 죽이려는 놈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 된다. 다른 키클롭스들은, 아무도 죽이려는 이가 없는데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걸 보니 미쳤나보다 생각하고 돌아가버린다.
여행자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면 흥미롭다. 여행자 오디세우스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그의 허영심이었다. 그가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스스로를 노바디로 낮춘 덕분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감추고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숫양의 배 아래에 몸을 숨겨(가장 약한 존재인 양의, 그것도 배 아래에 바짝 달라붙어서야 겨우) 키클롭스의 동굴, 자신의 허영심이 초래한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는 살아남은 부하들과 함께 정박해둔 배로 달려간다. 그리고 서둘러 섬을 떠난다. 그러나 성공적인 탈출에 흥분한 그의 내면에서 다시 허영과 자만이 고개를 쳐든다. 그는 '사람의 고함소리가 들릴 만큼 섬에서 멀어'지자 키클롭스를 조롱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화가 난 키클롭스는 큰 산의 봉우리 하나를 뜯어내 그들 쪽으로 던진다. 그 때문에 배는 다시 섬 쪽으로 밀려가고 그의 부하들은 그를 만류한다. 제발 키클롭스를 자극하지 말라고,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더욱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른다. ...(중략)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179~185쪽)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nobody)로 움직이는 것이 여행자의 자세
오디세우스와 키클롭스의 이야기를 통해 여행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는 우리에게도 유용한 조언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213쪽)
김영하
(1968~ 현재)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으로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이 있다. 여행에 관한 산문 『여행의 이유』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냈고 산문집으로 『보다』 『말하다』 『읽다』 삼부작과 『랄랄라 하우스』 등이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한다.
*출처: 알라인 서점(www.aladin.co.kr)
출처: 유튜브 영상 (3분 52초)
영상에 나오는 "폴리페모스"는 외눈박이 거인족 키클롭스 중 1명으로 포세이돈의 아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도 읽어보세요. ^^
내용구성 : 박미진(대구동중)